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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들었던 소방을 떠나면서...(인제소방서 김상철서장님 퇴임사)
작성자
심성용
등록일
2017-05-30
조회수
2165
내용

정들었던 소방을 떠나면서

 

존경하는 인제소방서 직원여러분 ! 그리고 강원소방가족 여러분 !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는 가끔 세월이 유수같다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이 말이

이렇게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는 줄은 퇴임을 결정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38년이란 긴 세월이 어느덧 유수와 같이 흘러 이제 종착역인 바다에 다다른것 같습니다. 소방에 첫발을 디딘지 32, 이제 조용히 여러분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산을 돌고 계곡을 지나 긴 여정을 마쳤지만, 이젠 좀더 넓은 바다에서 새로운 세상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1976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6월에 영월군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지만 좀 더 새로운 일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85년도에 소방에 첫발을 담았는데

그로부터 어느덧 32년이란 세월이 또 훌쩍 지나갔습니다.

‘85년 태백소방서에 첫 발령을 받아 정선, 영월, 홍천, 원주소방서와

소방본부를 거쳐 이제 인제소방서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방에 들어와서 소방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여야할지,

철부지 같던 시절,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현장을 누비는 선배들의 열정과 의지에 감동되어 여기구나하고 뿌리를 내리다 보니 어느덧 소방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소방이 내 인생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영욕의 세월들이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동안 화재를 비롯하여 구조 구급업무와 산불현장, 수해현장 등 많은

재난현장을 누비면서 많은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으나

무엇보다도 소방조직 관리를 위해 나름대로 열정을 쏟아 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998년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IMF를 맞았는데 공무원 감축과 관련하여

우리 소방공무원도 당시 1,328명의 정원 중 20%260명을 감축하라는

통보를 받고 남몰래 울면서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의회는 물론 조직관리

부서와 언론사 등을 정말 밤낮없이 쫓아다닌 결과, 3년 내 9%를 감축하는

계획을 세워서 실제로는 단한명도 강제 퇴직 없이 무사히 넘긴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조직관리 업무를 보면서 1998년도에 강원도 소방항공대와 춘천수난구조대를 처음으로 조직했고,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소방예산 장비업무를 담당하면서

철원, 정선, 횡성소방서를 비롯해 항공대, 안전센터, 지역대등 82개의 청사를 증축했습니다. 당시 385대의 소방차량을 557대로 정수를 늘려 소방서별로 버스, 화물차, 진단차, 행정차량을 신규로 보강했으며

2006년도에는 에티오피아에 소방차 40대를 변상호 본부장님과 하께 직접

현지에 가서 기증하기도 했고,

 

2007년는 오늘 이자리에 참석해 주신 우원기 전 춘천소방서장님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직접가서 12억원의 예산으로 생화학차를 제작하고,

전국 최초로 긴급구조통제단 버스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행정담당으로 재직하면서 570여명의

인력을 증원하여 최초 3교대 근무도 실시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늘 반쪽밖에 못되었고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던 바를 다 마무리 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한쪽 가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하여 전국 4만여 동료공무원들의 숙원이었던 대망의

소방청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 4만여 소방공무원 모두는 이

절대 절명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서 반드시 이번에는 독립된 소방청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좀 더 허락을 했더라면 함께 참여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부질없는 생각이었고, 이제 훌륭한 후배님들에게 더 크고 아름다운 과제를 남겨놓고 떠나려 합니다

훌륭한 후배님들이 있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의 염원이 성취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많은 선배님들의 퇴임을 봐오면서 보내는 서운함과 떠나는 이의

아쉬움에 더러는 눈물을 흘린 때도 있었습니다.

때론 떠나신 분의 뒷날이 궁금하여 소식을 물어 보기도 하고, 선배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어려운 것처럼 안타까움에 애를 태웠고,

세월이 흘러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덧없는 인생을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햇병아리시절 결혼하여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는 신혼의 달콤함보다 박봉으로 인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할 뿐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30여 년간을 오직 남편말만 믿고 속아서 살아온 아내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동안 저는 여러모로 정말 가정생활을 잘못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사무실 일을 핑계로 아무것도 도와주질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가족친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남아있는 여생은 진정으로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존경하는 후배님들께 한 가지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늘 강조했던대로 가정보다 직장이 우선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가족을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고 가족이 있어야 직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세상사 모두가 늘 바쁘게 돌아가지만 가정을 위해 매일매일 작은 시간이라도 투자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가 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오늘도 당신이 별일 없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인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조병화 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이제 이 의자를 여러분께 돌려 드릴때가 되었나 봅니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언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었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회자정리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비록 오늘 정든 직장을 떠나가지만

인연이 허락하여 다시 만날 기회가 오면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만날 것을 기대해봅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 5. 30

인제소방서장 김상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