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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보라 속 선자령에서 저희가족 구해준 평창구조대 대원님들
작성자
진선희
등록일
2016-02-15
조회수
2283
내용

늦었지만 이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서울 서초동에 사는 초교 6학년 아들과 5학년 딸을 둔 준서 엄마입니다. 남편이 평소 산을 좋아해서 등산을 많이 다녔고 특히 혼자서 백패킹을 했고 그 때문에 저희 가족도 할 수 없이 전국을 끌려 다니며 이산 저산을 다녔습니다.

지난 설날 아침 이미 남편은 전날 배낭 4개를 단단히 싸놨기에 차례를 지내자마자 11시에 바로 예정되어 있던 선자령으로 떠났습니다. 전날 당일 날 아침에도 기상예보가 선자령 주변에 눈이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최저온도가 영하8도 비교적 따뜻했기에 예정대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동 고속도로는 연휴인파로 꽉 막혀서 선자령 입구까지에는 오후 4시가 지나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바람 한 점 없이 날이 포근하여 오랜만에 사각거리는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등정 예상시간 2시간에 마쳐 해지기 전인 6시 즈음은 정상에 도착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정상 부근에서 작은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려 했기 때문에 예상시간 보다 2시간 늦은 시간이었지만 조금 서둘러 올라가면 큰 무리는 없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남편은 선자령을 몆번 와봤고 저희가족도 지난여름에도 함께 정상에서 비박을 하였기에 잘 정리된 등산길로 인해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작은 애가 조금 힘들다고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올라왔지만 총 5.5km 등산길 중 1km를 남겨두고 산길을 벗어나 능선에 도착했습니다. 예상시간보다 20가량 늦어서 도착했는데 중간 길부터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더니 등산길에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날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 남편도 조금 초조했는지 발길을 재촉했는데 정상 근처 800m의 안내 팻말을 보고 능선에 올라간 순간 갑자기 몰아친 거센 눈보라와 강한 바람에 저희 가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가 어두워져 헤드렌턴을 켜니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었고 게다가 이미 눈이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정상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할 수 없이 일단 등산길이 아닌 약간 사면으로 내려와 사면의 바위 뒤로 저희 가족을 숨기고 우모복을 챙겨주고 핫팩을 터뜨리고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숨을 고루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눈보라와 바람이 우리가족의 체감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그렇게 산을 잘 다니던 남편도 당황을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일단 바위 뒤를 나와 하산을 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왔지만 역시나 쌓인 눈과 완전히 어두워진 눈보라 속에서는 하산길 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위급 상황이라 인식한 저는 아무데나 텐트를 치자고 하였고 남편은 이 눈보라에서는 텐트조차 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결국 남편은 태어나 처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 연결이 잦게 끊기곤 했지만 다행이 연결이 되어 119 소방본부, 강원소방서 평창구조대 까지 차례로 연결이 되어 구조 요청과 현위치 그리고 현상황을 자세히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실의 안내대로 핸드폰을 작동시키니 저희들의 위치가 GPS로 정확히 잡혔고, 위치를 확인했다는 문자를 전송 받았을 때 저희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전화가 자꾸 끊겼고, 상황실에서도 이동하지 말라고 하여서 어딘지 모를 넓은 능선길에서 눈보라와 강풍을 그대로 맞으며 우리 4식구가 둘러서 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실에서는 저희의 그런 어려움을 아시는지 일십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줘서 그나마 추위를 힘을 내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꼬맹이들도 생각보다 의젓하게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과연 구조대가 이 산 속 까지 올 수 있을까? 올 수 있다면 스키장에 스노우 모빌 같은 차가 와서 우리를 실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남편은 어림도 없는 기대 말아라 라며 구조대원의 가이드로 하산길만 찾아갈 수 있으면 그나마 됐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컴컴한 눈보라 속에서 2시간을 걸어서 하산을 생각을 하니 캄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발이 시려 동덩거리며 한시간이 지날 즈음 대략 1km 전방에서 강한 랜턴 불빛이 보였고 사이렌 소리도 들렸습니다.

모두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며 어서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오리라고 기다리며 계속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 랜턴 불빛과 빨간 경광등 불빛은 멀리서 봐도 계속 이쪽 저쪽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조대원들도 이 눈보라 속에서 방향을 못잡아 저희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들이 헤매는 것이 거의 1시간이 되었을 즈음 저희가 구조대원과 통화가 연결 되었는데 제가 그 분들의 불빛을 찾아가기로 하고 우리가 불빛을 찾아 갈테니 랜턴을 계속 켜고 사이렌을 계속 울려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어느 방향인지는 몰랐지만 구조대원 분들과 계속 통화를 하면서 방향은 모르지만 불빛을 향해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해치고 나갔습니다. 점점 멀리있던 불빛과 사이렌소리가 가까워짐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밝은 불빛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잠시 저희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갑자기 전방에서 거대한 엔진음과 함께 작은 불도저만한 차가 갑자기 우리가족 앞에 나타났습니다. 옆에는 한 구조대원이 팔뚝만한 강한 랜턴을 들고 함께 뛰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구조된 후 남편이 말하길 흡사 화성에서 염무 가득한 달표면에 외계인이 탐사 차를 끌고 나타나는 영화같은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구조대원을 만나자 비로소 살았다고 안심했으며, 그 때까지 의젓하게 따라오던 막내 딸아이는 그제서야 울음을 떠트리더군요.

뛰어오던 구조대원의 첫 마디를 잊을 수 없습니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방향을 잃고 헤매느라 늦어졌다고... 저희는 이 먼 산 속까지 우리를 구조하기 위해서 한치앞도 안보이는 어두운 눈보라 속을 뚫으며 저희를 찾아온 것에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퀴대신 삼각형 케타필러가 4개 달린 산악구조차를 보고 정말 우리나라의 산악구조팀의 장비가 좋아졌고 구조문화도 선진화되었다는 것읕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그 차량이 2인승이었기에 아이들 둘을 먼저 태우고 저희는 구조대원과 함께 뒤따라 걸어가며 능선을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서도 역시나 눈보라로 길을 몇 번 헤매었습니다. 엄마아빠인 저희 또한 지쳐서 계속 뒤쫓아 갈수 없을 즈음 구조대는 근처에 하산하지 못하고 비박하며 있는 분들에게 쉘터로 일단 우리들은 안내해 주었습니다.

눈보라속에서 쉘터에 계셨던 그분들도 이미 밤10시가 넘은 시간에 눈보라속에서 나타난 우리 꼬맹이들을 보고 너무나 대견해하며 박수를 쳐주고 구조받은 것을 함께 기뻐해주었습니다. 쉘터는 바람이 불지않는 벽사면에 붙어서 쳤기에 안전했고 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그분들은 따뜻한 어묵라면까지 즉석에서 끓여주셨습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고 평상시 잘 안해주던 라면까지 먹게 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져보였습니다.

이제부터 구조대원과 구조차량은 눈보라치는 그 먼길을 산아래까지 3번을 왕복하며 저희들을 1시간에 걸쳐 하산시켜주었습니다. 설상차량은 탑승위치가 상당히 높아 조금 불안정해보였지만 눈덮힌 경사산길을 오르내리는데 정말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저희모두가 구조되고 산아래 베이스에 도착했을때 저희들은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어쩌면 섣부른 감사의 표현이 생명과 사명감을 걸고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는 분께 오히려 그 명예를 모욕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평창소방서 119차량으로 옮겨 타고 저희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태워다 주셨고 차안에서도 계속 저희의 안부를 물으며 따뜻한 말로 놀라지 않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비로소 저희 차에 도착하였고 구조대원과 떠날 인사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제 남편은 어의없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옷 찢어졌다고 뭐라 한 격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우리 네명의 배낭에 빠진 것이 없는지 우리 짐을 실고 왔던 119차량 뒤 트렁크를 한번 더 확인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놓친 물건이 생긴다면 구조대역시 돌려 보내느라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만 그 당시에 남편의 행동이 제 눈에는 참 무례하고 인정없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대원께서는 오히려 많은 구조장비로 꽉찬 트렁크를 혹시나 빠진 물건이 없는지 같이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분들은 저희차가 주차장에서 빠져 나갈때까지 지켜봐주셨고 그렇게 저희는 눈덮힌 고속도로를 조심조심 달려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마치 어제의 일이 현실이었나.. 꿈같은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흔히 TV에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고 어떻게 우리한테 이런일이 생겼나 어리둥절할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불과 1주일전에 설악산에 조난사고로 몇분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왜 사전에 위험상황을 예견하지 못하고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그로 인한 세금 손실이 많았을 텐데 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던 그였습니다. 또 선자령은 남편이 여러번 가봤고 능선도 거의 트래킹수준으로 완만하였고 또 남편은 완벽하게 남극에서도 하룻밤을 잘수 있는 동계백팩깅의 모든 장비를 갖추고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로 남편은 저와 피드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이 가장인 남편이 생사의 위험을 빠트리게 했나? 한마디로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생각한 안이한 판단들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남편은 명절의 교통체증을 짧게 예상했습니다. 둔내터널의 교통사고로 2시간이나 더 걸리게 될 줄을 예상 못했습니다.

둘째 교통체증으로 인한 지연으로 등산길을 늦게 출발하여서 위급상황에 대한 여유시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해가 졌기 때문입니다.

셌째 해지는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았습니다. 도시에서의 해와 산에서의 해가 다르다는 것을 남편은 늘 말하면서도 정작 정상이라는 목표앞에서는 억지로 끼워 맞추어 강행을 하였습니다.

넷째 가장 결정적인 것인데 남편은 선자령의 칼바람에 대해 익히 들어왔음에도 그것이 눈보라와 겹쳤을때에는 발자국이 없어져서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다섯째 남편은 절체절명의 위급상황에서 당황하여 생존팁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쉘터에서 경험많은 분이 알려주었듯이 일단 텐트를 꺼내 가족들이 뒤집어쓰고 그 안에 들어가서 구조요청을 해야했던 것입니다. 남편은 각 잡혀 예쁘게 친 텐트만을 생각했지 눈바람을 막는 생존을 위한 보호막으로서 텐트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판단 미스가 있었지만 그런 위험상황에서 바른 판단을 한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산속에서 더 헤매지 않고 스스로 살아 볼려고 빨리 119에 신고한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그간의 산을 탄 경험과 자존심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다면 그 영하 20도 이상되는 체감온도 아래에서는 우리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 됩니다.

저희 가족은, 제 남편은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차안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소방서와 소방방재청에 대해 어떤 잘못된 일을 설사 하더라도 우리가족은 119를 응원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소한도 119평창구조대는 저희 가족의 생명을 살려 주었던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역할을 묵묵하게,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수행한 두 구조대원께 진심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억지로 물어본 두 분의 성함은 평창구조대 소속 설상차 운전하셨던 이유표 부장님, 전화교신과 랜턴을 들고 눈밭을 뛰어다닌 김지남 대원님입니다. 사실 이 분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워낙 급박스러운 상황이었고 모두가 동계장비로 무장을 한 상태라 눈도 마주치며 인사도 제대로 못하였습니다. 저희는 얼굴도 모르는 초면의 119대원분들 이지만 명절 연휴에도 비상대기하며 언제 위급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며 군화끈을 풀지않고 대기하고 밤10시에도 출동할 수 있는 이 분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대한민국 119 소방구조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이 두분 외에도 모든 119 구조팀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담보치 않고 전력을 다하리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제가 겪은 두 분의 이름을 올리기에 송구하지만 함께 고생하는 모든 119구조대원을 대신해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가지오니 함께 모든분께도 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모든 일은 겪어봐야 알듯이 함부로 말하고 쉽게 판단하는, 그리고 자기가 다 안다는 듯이 모든 인간사를 재단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최소한도 저희 가족은 그 구조의 손길을 직접적으로 받아 봤기에 저의 마음속에 119구조대를 향한 응원이 늘 함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출동 준비로 대기하고 있을 생명을 담보로 박봉에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우리 119 구조대에게 더 높은 사기로 무장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응원이 함께 할 수 있기를 저희 가족 꼬맹이들과 함께 손뼉치고 파이팅을 외쳐 봅니다.

2016년 2월 15일 서울 서초동 진선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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